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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CURE_샘플

THE CURE
 
 
정석은 아니었으나 정석 같은 남자였다. 무슨 말이냐 하면 행동은 FM에 가까웠지만 타고난 성질머리 탓에 FM은 못 된다는 말이었다. 서른을 갓 넘긴 주제에 장교 타이틀을 달았으니 배알 꼴린 놈들이 비아냥거리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했다. 성준수는 제 뒤에서 수군거리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꼬우면 참전하던가, 병신새끼들. 같은 말을 굳이 덧붙여서 그렇지 않아도 열등감에 부들거리던 놈들과 시비가 붙었다. 그때마다 그 성질머리는 피할 생각도 없이 주먹부터 쥐고 봤기에 곤욕을 치르는 것은 싸움을 말리는 재유뿐이었다. 성준수는 징계를 별로 무서워하지 않았다. 그를 대체할 인력이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여튼 이런저런 이유들로 부대에는 항상 성준수의 이름이 오르내렸고 그 덕분에 같은 팀으로 일하는 지상 부대원들 역시 안 들어도 될 말을 한 마디씩 듣곤 했다.
그는 타고난 사냥꾼이었다. 성격은 좀 더러웠지만 국가를 막론하고 늘 최전방에서 피땀 흘리며 싸워왔으니 팀원들은 그가 예민한 것도 그러려니 했다. 매일 같이 사람을 죽이고 죽는 것을 봐 온 그가 사근한 성격이면 그건 그것대로 강제 전역당하고도 남을 일이었다. 솔직히 대한민국 저격수 중에 그만큼 재능이 뛰어난 자도 없었기에 성준수는 수많은 전쟁 국가에 파견되어 최전방에 배치되었다. 그에게는 어릴 적 어머니를 도와 콩나물 대가리를 다듬을 때 보다 적의 머리를 따는 게 더 쉬웠다. 처음 파견 나갔을 때 적군의 머리는커녕 허벅지에 총탄을 박던 구데기 에임을 가진 상호도 준수의 혹독한 트레이닝 지난 후 이젠 준수만큼이나 쉽게 방아쇠를 당겼다. 준수의 가르침 아래 무게 중심을 싣는 법부터 고쳐나가던 상호는 소위님은 진짜 천직이십니다, 소리가 절로 나왔다고 하더라.
 
작전지의 산 끝자락 바위 뒤에 몸을 숨기고 있던 준수는 무전이 섞여 들어오는 인이어가 거슬린다는 듯 잡아당겨 빼고는 모포 아래서 몸을 조금 더 낮추었다. 산 속은 고요했다. 이따금 부는 바람만 머리칼이 부드럽게 흩날릴 뿐 흔한 새 소리 하나 들리지 않았다.
그래서 산이 좋았다. 드넓은 자연이 주는 무거운 적막은 그에게 묘한 위로를 주곤 했다. 물론 좋아하는 이유는 그 뿐만은 아니었다. 몸을 숨길 수 있는 요소도 많고 저격하기에 최적의 장소였으니까. 그 중 꼭대기로 가까워질수록 느껴지는 차가운 공기가 가장 마음에 들었다. 그 적막 속에 홀로 남겨진 시간은 긴장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성준수는 그 속에서도 낭만을 찾을 줄 아는 남자였다. 완벽한 자리를 잡은 준수는 여유롭게 주머니를 뒤적여 사탕 하나를 꺼내 물었다.
전쟁이 시작된 후로 산은 품고 있던 모든 생명이 죽은 것처럼 소리를 지웠다. 고요 속에 그가 들여다보는 조준경 안은 꼭 다른 세상 같았다. 소리는 들리지 않고 오로지 몸짓만으로 대화를 하는 세상. 그 안에 비치는 사람들이 모두 어떤 원 안에 갇혀있는 것처럼 보였다. 포탄이나 산탄에 머리통이 반쯤 날아가고 쪼개진 것이 아닌 이상 사람의 머리통은 웬만하면 동그랗다. 그는 익숙하게 동그란 조준경 안으로 동그란 대가리를 겨눈다. 목표물이 잡히고 주저 없이 방아쇠가 당겼다. 방금까지 그와 손짓으로 대화를 나누던 사람의 얼굴 위로 붉은 피가 튀었다. 그가 놀라기도 전에 이마 정중앙으로 다시 총탄이 날아든다. 조준경 밖으로 쓰러지는 사람을 보며 준수는 입 안에서 굴리던 사탕을 딱 소리 나게 깨물었다. 목구멍 뒤로 서늘한 박하 향이 넘어왔다.
 
국가의 영웅, 지상 최강! 큰 공을 세우고 돌아온 지상 특수부대에 찬사가 쏟아졌다. 그들이 일궈낸 쾌거로 동맹국의 적군은 무기고를 잃었고 주요 병력이 배치되어 있던 두 중대가 전멸했다. 힘찬 박수소리 앞에 선 성준수의 빳빳한 정복 위에 다이아가 하나 더 달렸다. 아버지를 따라 쓰리스타를 달겠다던 포부에 한 걸음 더 다가선 것이다. 준수는 끓어오르는 열망에 두 주먹을 꽉 쥐었다가 태극기 앞에 경례했다. 가슴이 뜨거웠다. 그에게는 열정과 목표가 있었고 기꺼이 이 한 목숨 조국에 바칠 준비가 되어있었다.
 
그러나 진급의 기쁨을 누릴 새도 없이 재앙이 닥쳐왔다. 전 세계에 동시다발적으로 원인을 알 수 없는 전염병이 퍼진 탓이었다. 걷잡을 수 없이 늘어가는 피해에 희망을 포기하는 사람들이 늘어갔다.
누군가가 절망에 찬 목소리로 인류의 종말을 말했다.
 
 
 
학명이 정해지지 않은 질병, 전에 없던 변이바이러스. 전염병이라는 게 어느 세대에서나 알음알음 생기던 일이기에 국가는 안일하게도 안전 수칙만 몇 가지만 세워 국민들을 독려했다. 비슷한 질병 사례를 토대로 백신이 만들어질 것이라며 말이다. 나름의 역학조사가 시작되었으나 바이러스는 여전히 원인도 출처도 모른 채 빠른 속도로 확산되었고 피해자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전쟁 중에 있는 국가들은 서로의 화학 테러를 의심했고 앙심의 골을 깊어가는 와중에 전쟁과 관련이 없는 국가들은 전쟁국을 탓하기 시작하며 그야말로 세상은 재난, 대혼란에 빠지게 되었다.
 
한국도 그 꼴의 예외는 되지 못했다. 초기 대응이 미흡했던 것은 물론이거니와 전파 속도가 너무 빨라 감염자가 줄줄이 늘어났다. 언론에서는 피해자 집계를 포기한지 오래였고 각 지역에 마련된 대피소로 피하라는 안내방송에 매일 같이 울려댔지만 비감염자들은 선뜻 집 밖으로 나오지 못 했다. 그야 창문만 내다봐도 길바닥이 피로 흥건했으니 겁이 날만도 했다.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들은 소리에 매우 민감했고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비감염자에게 공격성을 보였다.
병원에는 시도 때도 없이 피투성이가 된 사람들이 실려 왔다. 감염자에게 물리거나 상처 입은 사람은 상처 규모에 따라 시간차를 두고 난동을 부리기 시작했다. 아비규환이 되는 것은 한 순간이었고 안타깝게도 병원의 피해가 가장 컸다. 응급실로 실려 간 감염자들이 의료진은 물론이고 침상에 누워있던 환자, 보호자를 가리지 않고 물어댔으니 피해자가 다시 매개체가 되어 누가 병원을 겨냥하고 바이러스를 살포한 것처럼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하고 출동한 경찰은 병원을 봉쇄하고 실탄을 발포했지만 이미 너무 늦은 판단이었다. 총 소리에 창문으로 몰린 감염자들의 무게를 이기지 못한 유리가 날카로운 파열음을 내며 깨졌다. 소음과 함께 괴기스러운 소리를 내며 1층으로 추락한 감염자들은 어디가 꺾여 부러지고 피를 흘리면서도 비감염자에게 집착적으로 달려들었다. 대열이 무너지고 격리에 실패한 감염자들은 생존자를 찾아 시내로 달려 나갔다.
인류는 이대로 멸종하는가, 우리에게 희망은 없는 것일까, 따위의 말들 사이에서도 누군가는 생존하기 위해 맞서 싸웠고 무너진 질서를 바로 잡았으며, 서로를 도와 끝내 안전을 쟁취해 그들만의 작은 대피소를 꾸려나갔다.
 
 
 
정부는 나라 전체를 재난지역으로 선포하고 길거리에는 무장한 군인과 경찰이 배치되었다. 안전지대와 대피소로 넘어오는 사람들을 보호하며 그들 뒤로 달려오는 감염자들에게는 실탄을 발포했다. 비감염자인지 아닌지 식별이 불가능한 사람 역시 사살됐다. 개중에는 피를 잔뜩 뒤집어쓰긴 했어도 감염되지 않은 이도 분명 있었을 테지만 그런 위험 부담을 안기엔 상황이 너무 안 좋았다. 감염자들의 시선을 분산시키기 위해 매일같이 틀어놓은 사이렌 경보로 거리엔 소음이 가득했다. 이런 재난이 있기 전부터 비감염자들을 사살해온 준수는 차라리 마음이 편했다. 누가 봐도 저것들은 지금 인간이 아니니까. 머리통이 아작 나지 않는 이상 하반신이 없어도 기어 다닐 수 있는 존재가 어찌 사람으로 보이겠나. 투입된 군부대의 주된 임무는 생존자 확보와 감염자 사살이었다. 군인들은 여러 개의 팀으로 나누어 하루에 네 차례 주변 건물들을 수색하고 감염자들과 싸웠다. 그 과정에 물론 희생도 적지 않았다. 매일 사망자가 나왔고 지역 내에 임시로 만든 화장터는 쉼 없이 돌아갔다. 생존자 확보보다 사망자가 더 많은 날도 있었다. 절망 속에서도 어떻게든 살아간다고, 시간은 어느 덧 바이러스가 시작된 지 2년이 지나가고 있었다.
 
감염이 오래된 개체는 상처 부위가 썩어 살점이 녹아내리고 시취가 났다. 뼈가 드러나고도 비척비척 걸어 다니는 걸 보면 실로 놀라운 일이었다. 전장에 익숙한 지상 부대는 적응까진 아니어도 맡아본 냄새인지라 그러려니 했는데 징병 된 대부분의 어린 군인들은 구역질을 참지 못했고 골목 구석에서 속을 게워내는 소리에 잘 참고 있던 기상호가 별안간 볼을 부풀리더니 입을 틀어막았다. 삼켜라 빨리. 키득거리면서 상호를 놀리던 태성과 다은은 뒤따라오던 재유에게 혼이 났다. 재유는 아프지 않게 태성과 다은의 정강이를 툭툭 차며 입을 열었다. 마, 니들은 여서도 장난을 치고 싶나.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제법 큰 목소리가 골목에 메아리쳤다. 아차 싶었지만, 이미 늦었다. 성준수가 빠르게 장전한 총을 꺼내들어 멀리서 달려오는 감염자를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소음기를 끼운 소총에서 뜨거운 탄피가 튀어 올랐다.
 
“이 씨발 새끼들아…. 뒤지고 싶어 환장을 했나, 아가리 여물라고 분명히 말했지. 복귀하면 처맞을 줄 알아.”
 
서늘한 눈빛에 지은 잘못이 있는 다은이 꿀꺽 침을 삼킨다. 이건 진짜 조졌다. 대원들은 바로 전투태세로 돌입해 장전된 총을 꺼내들었어 발포하기 시작했다. 소음기를 끼웠다 해도 여러 발이 동시에 터지니 소음이 생길 수밖에 없었고 거리에 몇 보이지 않던 감염자가 빼곡하게 얼굴을 드러냈다. 준수는 먼저 골목을 빠져나가 앞길을 터 뒤따르던 대원을 빼내었다.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소란이 준수네 소대로 향하자 반대편으로 이동했던 다른 팀에서 건물 안에 숨어있던 민간인들을 구출하는 모습이 보였다. 생존자 세 명을 확보했다는 무전에 준수는 소대원 일부를 데리고 자리를 이탈했다.
남은 대원의 통솔은 재유에게 맡긴 그는 소음기를 빼고 건물을 향해 총구를 올렸다. 탕! 파열음과 함께 건물 유리창이 깨지고 창문을 쾅쾅 내려치던 감염자 한 명이 피를 쏟으며 건물 아래로 추락했다. 바로 아래 버려져 있던 승용차 위로 떨어진 감염자는 구멍 난 이마에서 끈적한 피를 흘리다 구겨진 차 위에서 몇 번 꿈틀거리고는 이내 움직임을 멈추었다. 준수는 자신들에게로 향하는 감염자를 한 명씩 쓰러트렸다. 지금처럼 전 세계의 물자 공급이 원활하지 않은 때에는 총탄을 아껴야 했기에 가능한 한 발로 깔끔하게 처리해야했다.
그는 조준경 안에 머리가 들어오면 망설임 없이 방아쇠를 당겼고 총성이 울릴 때마다 감염자는 하나 씩 고꾸라졌다. 계속해서 울리는 총 소리에 태성이 제게 달려드는 감염자의 눈 위로 잭나이프를 쑤셔 박고 준수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중위님, 아무래도 소음기 다셔야겠는데요.”
“좆 까.”
“우리가 미끼인 건 알겠는데 자꾸 발포하시면 얌전히 있던 놈들까지 몰리지 않습니까.”
“진 소위네가 안전구역까지 이동한 것 확인 되면 부대로 복귀한다. 그때까지 엄호하고 보이는 감염자들은 다 사살해.”
 
그때 어디선가 콜라 캔 하나가 날아들었다. 바닥에 한 번 부딪혀 올랐던 콜라가 옆구리가 터져 치이익, 탄산 거품을 뿜어 댔고 소대원들은 당황한 듯 콜라만 쳐다보고 있었다. 그 사이에 준수는 콜라가 날아든 방향을 향해 빠르게 총구를 옮겼다. 레티클 너머 간절한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이와 눈이 마주쳤다. 생존자였다. 그는 천천히 총구를 내렸고 비슷하게 생존자들을 발견한 희찬이 준수의 팔을 붙잡고 흔들었다.
 
“중위님, 16시 방향 3층에 생존자요! 육안으로 식별되는 인원 두 명입니다!”
“확인. 공태성, 후방으로 빠지고 정희찬이 중간에서 따라와. 2층부터 정리하고 진입한다. 나머지 둘은 외부에서 대기.”
“예, 알겠습니다.”
“알겠습니다!”
 
한 쪽 유리가 모두 깨진 건물 안으로 들어서며 준수는 빼두었던 소음기를 다시 끼웠다. 발아래서 까드득, 유리 밟히는 소리가 나자 2층 출입구가 금세 소란스러워졌다. 희찬은 적당한 유리 조각을 챙겨 문틈 아래를 끼워 넣은 뒤 천천히 문고리를 돌렸다. 유리가 끼인 문이 더 벌어지지 못하고 한 뼘 정도만 열린 채 기괴한 마찰음을 냈다. 문이 열리자 밀폐된 공간에서 썩어 들던 시취가 터져 나와 문 가까이 서있던 희찬의 얼굴이 잔뜩 구겨졌다. 살점이 떨어진 손들이 앞 다투어 현관 밖으로 손을 뻗어 댔고 하얀 벽 위로 검붉은 핏자국이 묻어나기 시작했다. 한 걸음 뒤로 물러선 희찬이 권총을 꺼내 들자 총구 앞을 막은 준수가 카람빗을 꺼내 들어 희뿌옇게 문드러진 눈을 내려찍었다. 몰려든 머리통을 서너 번씩 내려 찍어주니 몇 분 지나지 않아 소음이 잦아들었다. 손을 내리자 제복 겉면에 묻어있던 피가 흘러내려 칼끝을 타고 바닥으로 똑똑 떨어졌다. 혈액이 부패한 냄새는 역겨웠다. 인상을 쓴 준수가 깨끗한 손으로 마스크를 더 단단히 올려 쓰고 희찬에게 턱짓했다. 올라가라는 신호였다.
 
준수네가 데리고 나온 생존자는 총 네 명이었는데 그중엔 허리만치 오는 애도 하나 있었다. 멀쩡한 세상에 살았으면 초등학교나 다니고 있을까. 사람들은 제대로 먹지 못해 야윈 모습이었다. 통솔하던 이에게 물으니 벌써 삼일을 굶었다고 했다. 가방에서 물과 초코파이를 꺼내 건네자 어른들은 당연하게 아이부터 챙겨주었다. 단 것을 문 아이는 무장한 군인들의 모습에 겁을 먹었는지 제 어머니의 뒤로 몸을 숨겼다. 제 몫을 나눠주고 생존자들의 상태를 살피던 준수는 옆에서 태성이 물을 마시려 입에 대기 무섭게 그의 물통을 낚아챘다. 별안간 턱을 다 적신 태성이 아이 씨! 하고 성질을 부리자 준수가 눈썹을 한쪽 들어 올리고 그에게 물었다.
 
“아이 씨?”
“아!”
“아?”
“일부러 그러셨죠.”
“당연하지.”
“와, 성격 진짜!”
“너만 할까. 잘 마셨다.”
 
입술만 축였다는 표현이 맞았다. 뺏기기 전과 큰 차이가 없는 물통을 되돌려 받은 태성은 연신 구시렁대며 축축하게 젖은 제복을 툭툭 털어내고 다시 무기를 정비했다. 해가 점차 짧아져가는 만큼 수색은 쉽지 않았는데 그래도 오늘은 D지구에서만 생존자가 일곱이 모였다. 지난 삼주 동안 수색 팀 4소대가 총 열 명의 생존자를 구조한 것에 비하면 대단히 재수가 좋은 날이었다.
 
 
 
시일이 지날수록 생존자의 발견은 더뎌지고 더 넓은 범위를 수색해야하는 군인들은 지쳐갔다. 한 때 사람이었던 것들을 죽여야 한다는 것에 거부감을 갖는 군인도 많았다. 바이러스 사태가 1년쯤이 지나자 PTSD를 호소하며 전역하는 이들이 생겼다. 군대 와서 평생 안고 갈 트라우마를 얻었다면서 울며불며 군과 국가를 욕하던 부하를 보며 성준수는 갈 거면 시끄럽게 굴지 말고 빨리 꺼지라고 인상을 구겼다. 한바탕 소란이 지나고 남의 일인데 지가 왜 울었는지도 모르겠는 기상호가 입을 삐쭉이며 냉혈한, 하고 중얼거렸다. 옆에서 희찬이 조용히 하라고 쿡 옆구리를 찔렀지만 조용한 내무반 안에서 그 소리를 못 들을 리가 없었다. 준수의 시선이 자신에게로 향하자 기상호는 또 묘한 표정을 지으며 변명 아닌 변명을 했다. 입씨름하기엔 피곤했던 하루라, 준수는 부대원들에게 쉬라는 눈치로 손을 대충 저어 보이고 내무반을 벗어났다. 숙소로 향하다 말고 중앙 복도를 지나 건물 밖으로 걸음을 옮기니 뒤따라오던 재유가 준수를 불러 세웠다.
 
“준수, 아들이 하는 말 신경 쓰지 마래이.”
“내가 언제 걔네 신경 쓰는 거 봤어? 그냥 담배 한 대 피려고 나온 거야.”
“거짓말은. …니 괘안나? 그래도 맘 쓰여서 여까지 온 거 아이가.”
“저런 나약한 새끼들 달고 작전 나갈 바엔 차라리 혼자 하는 게 나아.”
“그건 아니제.”
“말이 그렇다고.”
“맞나.”
“응. 맞아.”
 
담뱃불을 붙인 준수가 바람을 등지고 연기를 뱉었다. 나름 비흡연자인 재유를 배려한 행동이었다. 쌀쌀하게 불어오는 바람에 살짝 눈을 찌푸렸던 재유는 준수의 옆을 조금 지키다 먼저 들어가 보겠다며 걸음을 옮겼다. 홀로 건물 벽에 기대어 담배를 태우던 준수의 시선에 부대 북쪽의 하얀 건물 하나가 걸렸다. 문이라고는 달랑 하나 뿐인 건물 입구에는 무장한 보초가 세 명이나 서있었다. 건물 쪽을 빤히 보던 준수가 피곤한 눈을 꾹 눌러 문지르고 고개를 떨궜다. 몸이 무겁다. 기분이 영 더러운 게 오늘도 악몽을 꿀 것 같았다.
 
전쟁에서 사람을 죽일 때도 꾸지 않았는데 좀비, 라고 불리는 것들과 싸우게 된 후로 성준수는 거의 매일같이 꿈을 꿨다. 꿈속에서의 그는 아주 고요한 설산에 홀로 저격을 위해 몸을 낮춘 채 조준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조준경 안에 익숙한 얼굴들이 지나갔다. 친구들, 동료, 전우, 가족들. 그래도 성준수는 사살 명령 아래 무표정한 얼굴로 방아쇠를 당긴다. 동그란 원 안의 세상 속의 사람들은 콩나물 대가리 같은 거라 눈물은 나지 않았다. 그리고 …지수. 마지막에는 언제나 지수가 보였다. 준수는 꿈에서 깨어났다. 꿈속에서 방아쇠를 당겼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지독하리만큼 춥고 고요한 설산, 외롭다 못해 괴로운 현실에 가슴을 움켜쥔 밤이 지나갔다.
 
 
준수는 다이아 하나를 더 달았다. 그러나 썩 기쁘지는 않았다. 자신을 자랑스러워 해줄 부모님이 곁에 없었기에 이제는 별 다른 감흥이 없었다. 나라가 망한 마당에 진급해봤자 뭐가 좋다고. 소소하게 축하 파티라도 열자는 희찬에게 됐다고 손을 내저은 준수가 대원들을 뒤로하고 BOQ로 걸음을 옮겼다. 침대에 누워 커다란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잠을 자도 좀처럼 피로가 가시질 않았다. 시선을 올려본 창문 밖은 잿빛, 뭐가 거슬렸는지 인상을 구긴 채 다시 일어나 창문을 열어 재꼈다. 비가 오려는 건지 하늘이 축축했다. 먹구름 아래 갇힌 죽은 도시를 바라보았다. 권태롭다. 이후 한 달 동안 수색 부대는 생존자를 발견하지 못했다.
 
 
 
국가의 영웅이자 바이러스로 혼란스러운 세상에서 가장 많은 생존자를 구조한 지상특수부대가 살인자 소리를 듣게 된 것은 얼마 전의 일이었다.
 
군 간부들 사이에서 뜬소문처럼 돌던 정보가 현실이 되어 뉴스에 떡 하니 보도가 된 탓이었다. 이 빌어먹을 바이러스에 면역자가 있다는 소식이었다. 면역자의 혈액으로 백신을 만들면 기존의 감염자 역시 치료가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얘기에 여론은 뜨거워졌다. ‘치료’가 가능한지는 정확하게 밝혀진 바가 아니었지만 사람들은 가능성 하나에 매달렸다. 안전지대 밖에 두고 온 생사가 불분명한 가족들, 혹은 이미 감염이 된 소중한 이를 구할 수도 있다는데 누군들 희망을 품지 않겠는가. 그러나 누군가가 희망에 환호성을 지를 때, 누군가는 절규했다. 눈앞에서 총탄으로 가족과 친구들을 잃은 사람이었다.
소문이 기정사실화 되는 순간부터 부대 주변에서는 유가족들의 시위가 한창이었다. 백신이 나온 것도 아니고 여전히 밖에서는 감염자가 생존자를 죽이고 있는데, 목숨을 걸고 구한 우리에게 이제 와서 살인자란다. 부대 주변에는 붉은 현수막이 올랐다. 살인자! 하얀 페인트로 휘갈긴 글자를 바라보고 있으면서도 화가 나지 않았다. 비현실적인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이 판국에 잘도 저런 걸 구해왔군. 시위를 본 준수의 소감은 그 정도였다. 덕분에 출전 준비를 하는 군 내부의 움직임도 이전과 달리 어수선한 분위기였다. 그 전에는 콩나물 대가리였던 것들이 백신 얘기가 나오자 사람으로 보이는 모양이었다. 성 대위님, 저희 오늘 F지구로 갑니까? 거기가 학교 단지여서 오늘 반발이 더 심할 것 같지 말입니다. 부하의 질문에 벽에 기댄 채 입에서 사탕을 굴리던 준수가 고개를 들었다.
 
“그래서.”
“예?”
“거기 안 가면 어디 가게. 여기에 짱 박혀있게?”
“아, 아닙니다.”
“위에서 하라는 대로 해, 괜히 쓸데없는 짓 하다 누구 하나 다치거나 해 봐. 찢어 죽여 버린다.”
 
살벌한 소리에 입을 열었던 부하는 본전도 못 찾고 머쓱하게 입을 다물었다. 군인이란 것들이 까라면 까면 되지 말이 많아. 작게 혀를 찬 그는 시선을 조금 더 위로 올렸다. 시계는 어느 덧 여섯 시를 한참 넘겨 40분 언저리를 가리키고 있는데 상관을 만나고 온다던 재유가 예상보다 늦었다. 딱. 입안을 이리저리 굴러다니던 사탕이 반으로 쪼개졌다. 예정대로 일곱 시까지 대열 갖춰서 집합해. 지시를 남긴 준수가 재유를 찾아 자리를 이동했다.
 
빈 복도 끝에서 때마침 걸어 나오는 재유를 만났다. 재유. 낮게 부르자 심각한 얼굴로 바삐 걸음을 옮기던 재유가 놀란 듯 고개를 들더니 주변을 둘러보고선 준수의 팔을 꽉 붙잡아 밖으로 끌기 시작했다. 영문도 모른 채 준수는 같이 발걸음 속도를 올리며 물었다.
 
“재유, 어디 가. 곧 출발해야 해.”
“잠깐, 잠깐이면 된다. 내 들은 게 있어가.”
“무슨 일 있었어?”
“이쪽으로.”
 
재유는 복도 끝 휴게실로 준수를 끌고 나갔다. 아무도 없는 테라스 구역까지 나오고 나서야 재유는 주변을 돌아보고 입을 열었다. 조만간 부대 재편성이 있을 거라는 얘기였다. 생각지도 못한 말에 미간이 찌푸려졌다. 사망자야 늘 있었지만 재편성을 할 만큼의 인력 손실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밖에서 일어나는 시위 때문인가? 뭔가 더 할 말이 있어 보이는 재유를 보던 준수가 그의 어깨를 살짝 쥐었다. 재유. 한 번 더 그의 이름을 부르자 난감한 듯 달싹이던 입이 체념하고 열렸다.
 
“…준수 내 말 잘 들으래이.”
“어.”
“위에서 왜, 진짜 있다 하잖아, 치료제.”
“어.”
“그거 우리 부산으로 온다.”
“부산으로? 여기 연구실에서 맡는대?”
“어. 그런 것 같은데, 문제는 여 있는 사람들로 실험하려나 보다.”
“…뭐 씨발?”
“내도 정확하게는 모르는데 거의 확정인 것처럼 말하데…. 연구도 우리 쪽에서 먼저 시작해서 자료도 더 많고 위보다는 상황이 더 낫다나. 다른 사람들 사정이야 모르겠다마는 너는 여기에 지수가 있으니까 미리 알고 있어야 할 것 같아가.”
 
분노로 일그러진 얼굴 앞에, 재유가 할 수 있는 다른 위로는 없었다. 유감이란 말을 남기고 자리를 뜨자 그제야 혼자 남은 유리문에 제 얼굴이 비쳤다. 성준수는 화가 났다. 면역자라는 그 사람 하나로 백신을 어떻게 만들 건데. 저들을 다 구할 만큼의 공급이 되느냐는 말이었다. 연구에 필요한 감염자는 누가 공급하는가, 생포하는 것은 누구의 몫인가. 또 결국 위험부담을 떠안는 것은 결국 군인들이었다. 부대 재편성이란 건 아마도 실험체를 확보하는 팀이 생긴다는 말일 것이다. 그리고 당연히 그 팀은 저와 제 팀원들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감히, 누구한테 실험을 해?

“이런 씨발!”
 
욕설을 뱉으며 머리를 쓸어 올린 준수가 테라스 구석에 있던 쓰레기통을 신경질적으로 걷어찼다. 묵직한 군화에 채인 양철쓰레기통이 카랑카랑한 소리를 내며 뚜껑을 떨구었다. 고기방패가 되려고 팀원들을 키운 게 아니었다. 이건 조국을 위해 싸우는 것과는 다른 얘기란 말이다. 찡그린 얼굴로 고개를 들자 테라스 너머의 연구동이 보였다. 새하얀 건물, 그리고 그 지하 어딘가에는 성지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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