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담도담
“응, 행복해.”
“정말루? 기분 좋다~ 압빠가 행복하면 나두 행복해!”
활짝 웃는 얼굴. 한 품에 쏙 안기는 아이를 소중히 끌어안은 영중의 얼굴에도 미소가 끊이질 않았다. 작디작은 손으로 저를 위한 카네이션을 접었을 아이를 생각하니 기특해서 웃음이 나올 수밖에. 삐뚤삐뚤 접힌 붉은 종이 카네이션을 가슴팍에 달아본 영중은 거울 앞에서 이리저리 비춰보다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혜성아 여기 봐봐, 할머니한테 사진 보내드리자. 영중의 말에 아이는 품에 안겨있느라 앞머리가 다 흐트러진 채 핸드폰 카메라를 향해 V자를 씩씩하게 들이밀었다. 액정 가득 사랑이 담긴 부녀의 사진이 찍히고 영중의 볼에는 딸아이의 입술 도장이 찍혔다.
이사 올 때의 걱정과 달리 아이는 새 어린이집에 잘 적응했다. 노란 가방을 메고 노란 어린이집 셔틀버스 창에 얼굴을 딱 붙인 혜성은 배웅 인사를 해주는 영중에게 힘껏 손을 흔들어주었다. 셔틀 버스가 떠나고 영중은 뻐근한 어깨를 한 번 주무르며 다시 아파트 단지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회사를 다니면서 홀로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그리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기내동은 영중이 나고 자란 동네였지만 그만큼 너무 많은 과거를 품고 있어서 다시 돌아오기를 바란 동네는 아니었다. 이따금 파도처럼 밀려오는 과거의 기억들은 애써 잊고 있던 죄책감을 살살 긁어 마음을 좀먹었기에. 가능하면 멀리 떠나 살고 싶었다. 결혼하고 신혼집을 서울 외곽으로 구했던 것도 그 이유였다. 도망치듯 떠났던 기내동으로 되돌아온 것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달리 갈 곳이 없었다. 신뢰가 깨진 결혼생활, 이혼 소송과 양육권 싸움 등등으로 지칠 대로 지친 영중은 익숙한 품을 찾아 나고 자란 동네, 고향으로 돌아왔다. 출근하는 동안 아이를 돌봐줄 사람을 구하지 못해 염치없이 부모님의 손을 빌리는 것도 영중은 죄스러웠다. 물론 부모님이야 토끼 같은 손녀딸이 반갑기만 하시겠지만, 하나뿐인 아들이 이혼까지 한 마당에 그마저도 영중의 핏줄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 얼마나 속상해 하실까. 모두를 위해 그 사실은 비밀에 부치기로 했다.
첫째 딸은 아빠를 닮는다는 속설과 달리 다행히 딸은 커가면서 아내의 얼굴이 선명해져 갔다. 그래, 딸에게서 모르는 남자의 얼굴이 보이는 것보단 차라리 헤어진 와이프의 얼굴인 것이 나았다.
이사를 온 것은 초봄이었음에도 아직도 이삿짐이 다 정리가 되지 않아 집안 꼴이 엉망이다. 새 직장에 적응하랴 혜성이를 돌보랴 좀처럼 시간이 나지 않았다는 핑계를 댄다. 그래도 눈에 보이면 정리하겠지 하는 마음으로 거실에 끌어다 놓았던 단프라 박스는 아직도 구석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고 이 박스 탓에 있어야 할 자리를 잃은 조립식 책장은 포장도 풀지 못한 채 베란다에 방치되어 있었다. 끙…. 거실을 한 번 둘러보고 잠깐 앓는 소리를 낸 영중이 가볍게 기지개를 켰다. 어디 한 번 남은 짐을 정리해 볼까.
어릴 때부터 손이 큰 것에 비해 야무진 편이었던 터라 책장을 조립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이사를 결심하고 운 좋게 타이밍이 맞아 공동구매 특가로 구매한 책장은 조립식임에도 수평이 잘 맞고 꽤 튼튼했다. 평이 좋은 이유가 다 있다니까. 혜성이 가장 아끼는 어린이 전집을 다 올려도 무너지진 않을 것 같았다. 포장 채로 보관해서인지 편백나무 향이 은은하게 풍겨왔다. 마지막으로 뜯은 단프라 박스에는 온갖 잡동사니가 담겨있었다. 짐을 싸면서 버릴 건 버렸다고 생각했는데 그것도 아닌 모양이지.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아이보리색의 인형이었다. 이사 첫날 혜성이 울며불며 내놓으라고 찾아 헤매던 강아지 인형이다. 혜성의 엄마와 마지막으로 식사를 갖던 날 아내가 혜성에게 선물했던 거였다. 혜성이 울어대는 통에 이걸 찾겠다고 이삿날 그 자리에서 박스를 다 풀어헤쳤는데 하필 딱 하나 안 건드렸던 박스에 들어있을 건 뭐람. 꽤 묵직해서 당연히 영중의 짐만 들어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사 중에 잃어버렸다고 생각한 이 인형 때문에 혜성을 달래려 꼬박 일주일을 빌다 결국 두 손 두 발 다 들고 3층짜리 실바니안 아파트를 결제했던 지난날이 떠올랐다. 조그만 게 비싸기만 오지게 비싸서 애 엄마랑 살 때는 조르고 졸라도 절대 안 사줬던 거였는데.
잡동사니와 함께 방치된 인형은 당장 세탁기 형에 처해졌다. 앉은 자리에서 몸을 돌려 거실과 부엌 사이에 위치한 빨래 바구니를 향해 인형을 집어 던졌다. 익숙한 폼에서 손을 떠나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간 인형은 정확하게 바구니 틀에 맞고 부엌 바닥으로 맥없이 떨어졌다. 중 고등학교 내내 했던 농구 실력은 감이 다 뒤진 모양이다. 터덜터덜 일어나 인형을 빨래 바구니에 넣어두고 보니 이삿짐 박스 안에서 중학교 졸업 앨범이 튀어 나왔다. 서재의 책장 한 칸이 비는 게 이상하더라니 못 들어간 책들이 마지막 박스 안에 들어있었다.
청소라 하면 모름지기 추억에 한번 젖어주는 것이 암묵적 룰이 아니겠는가. 영중은 박스를 푼 지 5분도 되지 않아 정리를 미룬 채 앨범을 꺼내들었다. 겉에 묻은 먼지를 가볍게 털어내고 소파 앞에 쭈그려 앉아 첫 장을 펼치자 익숙한 듯 낯설어진 교훈과 교가가 그를 반겼다. 기억도 가물가물한 얼굴들을 대강 훑어보던 손이 빠르게 넘겨 찾아낸 것은 영중의 옆 반이었다. 가장 친했음에도 중학교 3년 내내 단 한 번도 같은 반을 하지 못 했던 얼굴을 찾아서. 사람이 참 간사하다 싶은 게, 사진으로나마 마주한 그 앳된 얼굴이 꼴에 오랜만에 본다고 꽤 반가운거다. 교내 두발 규정이 까다로웠던 탓에 빡빡머리 감자밭 사이에서도 혼자 새하얀 백설기 같은 얼굴을 하고 있는 그 애 말이다. 손끝에 이름 석 자가 스쳤다. 성준수.
…잘 지내고 있으려나?
한참 사진을 들여다보다 영중은 마지막 반까지 앨범을 넘기다 덮고 다시 상자를 제 옆에 끌어다 물건 정리를 이어갔다. 미화된 채 예쁘게만 남은 추억을 더듬고 그 뒤를 따라 떠오르는 기억은 애써 무시하며.
“아아 도담이이, 도다미, 도다아아압!!”
“전혜성, 그렇게 몸 젖히면 위험하다고 아빠가 말했지. 마트에서 그러면 안 돼요, 바르게 앉으세요.”
“아빠. 도다미이.”
“도다미가 뭔데? 아빠가 몰라서 그래.”
“할머니느은, 맨날 도담이네 혜성이랑 가는데에, 압빠는! 아아!!”
잠잠해지는가 싶더니 다시 커지는 목청에 영중은 진땀을 흘렸다. 그러니까 네가 말하는 도담이가 대체 뭐니 혜성아. 친구냐 물어봐도 아니라 해, 여기서 살 수 있는 거냐 해도 아니라 해. 핸드폰에서 볼 수 있는 거냐 해도 아니라고 해. 결국 혜성의 입이 댓 발 나와서는 울기 작전의 상태가 되어서야 당황한 영중이 카트에 앉아있던 애를 들쳐 안고 어르고 달래보지만 이미 늦었다. 어깨에 매달린 채 혜성은 서럽게 닭똥 같은 눈물을 흘려댔다. 그러면서도 입으로는 끊임없이 ‘도다미’를 찾는다. 영중도 덩달아 울고 싶은 기분이다. 혜성을 팔에 앉은 채 혼잡한 사람들 틈을 피해 카트를 끌고 구석으로 피신한 그는 주머니에서 한숨을 삼키며 핸드폰에서 어머니의 연락처를 찾았다.
남들은 주말에 쉰다는데 독박육아 중인 전영중에게는 주말이야말로 전쟁이 따로 없었다. 엉엉 우는 딸의 등을 토닥여줄 손이 모자라서 열심히 몸을 흔들어가며 애를 달랬다. 혜성을 잘 키워보겠다고 회사도 옮기고 남는 모든 시간을 쏟아 붓고 있는데 좋은 아빠가 되기란 왜 이렇게 어려울까? 혜성을 키운 지도 벌써 꽉 채운 3년이 되어 가는데 그에게 아이는 여전히 어렵기만 했다. 그렇게 서럽게 찾아 헤매는 ‘도다미’의 정체가 뭔지 알려줄 구원자는 수화 음이 열 번을 넘어가고 나서야 전화에 응했다.
-아들 왜? 엄마 오늘 성은이모랑 요가 간다 했잖아.
“죄송해요. 엄마 혹시 도다미가 뭔지 아세요? 생선인가? 혜성이가 자꾸 찾아서.”
-도다미? 아, 도담~ 그거 키즈카페 말 하는 거야. 도담도담이라고 우리 아파트 후문 바로 맞은 편 주택단지 쪽에 있는 거. 그 왜, 편의점 옆에 있는 새로 지은 연노란 색 건물 있잖아?
“아… 본 것 같기도 하고…? 도담도담? 알았어요, 엄마 고마워요.”
-거기 지ㅅ,
영중의 입에서 튀어나온 도담도담이라는 말에 번쩍 고개를 드는 혜성을 받쳐 잡다 핸드폰을 놓친 영중이 놀란 심장에 숨을 몰아쉬었다. 전화야 끊겼지만 방금 혜성을 못 잡았으면 진짜 대형 사고였다. 간 떨어질 뻔한 아빠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 지 울던 것도 뚝 그친 혜성은 다시 도담을 찾아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핸드폰을 주워들고 확인하니 다행히 액정은 멀쩡했다. 영중이 다시 카트 앞에 혜성을 태우고 눈물로 꼬질꼬질 해진 볼을 물티슈로 닦아주며 조건을 걸었다.
혜성이 먹고 싶은 거 다 사고, 아빠 붕붕카 타고 도담이네 같이 가자. 알았지? 도담이네 가기 전에 이거 먼저 하는 거예요? 혜성이 이해하기 쉽게 천천히 다정하게 입을 열었지만 세상의 우선순위가 놀이인 혜성은 도무지 아빠의 말을 이해할 수가 없다. 싫어, 도담이, 도다암.. 으앙!!! 압바 미워어!! 다시 시작된 대성통곡에 지나가던 사람들이 힐끔힐끔 두 부녀를 쳐다보고 덩치가 산만한 아빠는 사람들의 시선에 어쩔 줄을 몰라 한다. 아무래도 오늘 장보기는 글렀다. 담긴 거라곤 1+1 비엔나 소시지와 우유 한 팩이 전부인 카트가 털렁털렁 계산대를 향해 달려갔다.
그 와중에 제일 좋아하는 반찬인 소시지를 품에 안은 혜성은 도담도담인지 뭐시기에 갈 생각에 들떠서는 카시트에서 발을 동동 구르며 어린이집에서 어설프게 배워온 동요를 흥얼거렀다. 카시트 안전벨트를 채워준 영중은 진이 다 빠진 얼굴로 조수석에 우유팩을 던져놓았다. 장을 보려고 메모한 것들 중에 못 산 게 태반이라, 내일 점심시간은 회사 근처 마트에 반납해야할 판이다. 본래 외출의 목적이던 마트를 빠져나온 차는 아파트 단지를 지나 골목으로 진입했다. 어머니께 본 것 같다고는 했지만 사실 무슨 건물을 말하는 지 전혀 감이 안 왔다. 속도를 천천히 줄이고 창밖으로 시선을 돌린 영중은 연노란 색 건물을 찾아 열심히도 두리번거렸다. 편의점이 옆이라 하던데. 그때 뒤에서 혜성이 불쑥 외친다. 압바 왼쪽!
애들이 함부로 열지 못할 목적으로 달아놓은 무거운 유리문을 온몸으로 밀어 카페 문을 여는 혜성을 뒤늦게 발견한 영중은 기겁을 하고 달려와 문을 붙잡았다. 덕분에 제대로 잠그지 못한 유아가방에서 우르르, 혜성의 장난감과 간식이 떨어졌다. 틈이 생기자 신발도 안 벗고 우다다 뛰어 들어가는 말괄량이 딸을 붙잡으려 허공에 팔을 휘적거리던 영중은 허겁지겁 땅에 떨어진 물건을 집어 들고 뒤를 쫓아 들어갔다. 슬리퍼를 갈아 신으며 영중은 짐짓 무섭게 깐 목소리로 카운터에 매달린 토끼 인형을 잡아당기는 혜성을 말렸다.
“전혜성, 그거 만지면 안돼요. 그리고 아빠가 실내에서 뛰면 된다고 했어, 안된다고 했어?”
“압바 빨리 혜성이 토끼쿠키 사죠,”
“잠깐만,”
듣고 싶은 것만 듣는 못된 버릇은 누굴 닮았나. 너네 아빠는 아직 신발도 못 벗었어 딸…. 영중은 바닥에 실내용 슬리퍼를 내려놓기 무섭게 다시 제게 뛰어와 손을 잡아끄는 딸에게 이끌려 엉거주춤하게 카운터 앞에 섰다. 토끼쿠키 사듀새요. 토끼쿠끼. 말로는 쿠키를 주문하면서도 시선은 놀이공간에서 떨어지질 않는다. 볼 풀장으로 당장이라도 튀어나갈 기세인 딸의 손을 꼭 붙잡고 영중은 뒷주머니에서 지갑을 찾아 카드부터 내밀었다.
“어른 한 명, 아이 하나요. 토끼쿠키도 주시겠어요?”
“…….”
“여기 카드, 아. 어…?”
내미는 카드를 받지 않길래 고개를 든 영중은 카운터 앞에 선 직원을 마주하고 심히 당황한 듯 입을 뻥끗거렸다. 여기서 봐서는 안 될 것 같은 얼굴이 카운터 앞에 서있는 게 아니겠는가. 짙은 눈매, 마지막 기억보다 훨씬 성숙해지고 남자다워진 얼굴이 무심하게 손끝으로 포스기를 누르고 영중은 고개를 홱 돌리고 필사적으로 그 시선을 못 본 척했다.
…날, 알아보는 건가?
“아이는 음료 한 잔 포함 가격이라 하나 골라주시면 되시고, 어른은 추가로 결제해주시면 됩니다.”
“압바 혜성이는 사과쥬스 먹구 싶어.”
“저 그럼 사, 사과주스… 랑, 어… 커피는,”
“카페라떼 한 잔해서 2만원 결제하겠습니다. 기본 이용시간은 2시간이고 초과 시 10분당 1000원 이용요금 발생합니다.”
“네….”
“…자리 잡고 앉아 있어, 가져다줄게.”
아, 영중은 멍청한 표정을 짓다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시발, 못 알아 볼 수가 없지. 아 진짜 네가 여기 왜 있어? 어울리지도 않는 그 토끼 머리띠는 뭔데? 리본달린 하늘색 앞치마 뭐냐고 성준수!!! 그러나 입 밖으로 묻지는 못 했다. 돌려주는 카드를 챙기는 사이 다행히 궁금증을 해결해 줄 사람이 한 명 더 등장했다.
“어? 영중오빠?”
“어, 엇. 지수야.”
“와-! 오빠 오랜만이에요. 다시 이 동네로 이사 오셨다는 얘기는 이모께 들었는데.”
“둘이… 여기서 일 해?”
“지수 가게야. 난 알바고.”
“아, 알바생이 갑자기 일을 그만 둬서 오빠가 잠깐 도와주고 있어요. 앉아 계세요! 음료 가져다 드릴게요.”
이런 식으로 재회할 줄은 몰랐는데…. 영중은 미묘한 표정으로 자신을 쳐다보는 준수를 뒤로하고 제 팔을 쭉쭉 잡아당기며 걸음을 재촉하는 딸을 따라 안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주말 피크 타임이 지난 카페는 몇몇 학부모와 아이들이 있었지만 그래도 꽤 조용한 편이었다. 해가 들지 않는 창가 쪽으로 자리를 잡은 영중은 자리에 앉을 생각도 없이 볼 풀장으로 달려가는 혜성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누굴 닮았는지 사교성 하나는 남달라서, 풀장에 먼저 와서 놀고 있는 초등학생 쯤 되어 보이는 아이들한테 언니 언니하며 말을 붙인다. 처음 보는 아이들에게 냅다 말을 거는 딸을 보고 있으니 웃음이 났다. 그러다 뚝. 풀장 너머 카운터에 서있는 준수에게로 초점이 맞춰진다.
성준수.
전영중의 인생의 가장 큰 오점이자 실수인 존재.
10년 만에 보는 준수는 여전했다. 너무 여전해서 전영중의 비밀이 욱신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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